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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달아 오르게 하는 그의 혀

2021.06.16 13:12 2,89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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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쁜언니ad2813d0568c506a22d6739d9c275bc4_1623816790_5695.jpg
그녀를  달아오르게 하는 그의 혀

그녀를 달아오르게 하는 그의 혀


나는 식탐이 많다.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식탐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즐길 줄 안다. 매 끼니를 먹을 때면 ‘오늘은 어느 음식점의 무엇을 먹고 싶다’가 분명하다. 어른들과 먹는 자리나 회사에서 밥을 먹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친구들을 만날 때는 고집을 부린다. 친구가 먹고 싶다는데 그깟 한 끼 같이 못 먹어주는 친구는 드물다. 그 순간만큼은 그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긴박함이 있으니까. 그 음식을 먹는 데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갈 만한 다른 음식점도 미리 생각해놓는다. 그럼 먹는 내내 행복해진다. 혀 위에서 음식들이 한바탕 춤을 추고 나면 생리욕구를 해결한 듯한 절묘한 쾌감까지 느낀다. 다른 여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도 못 느낀다는데 나는 하루에 두 세 번을 느끼는 셈이다. 그런데 여자 친구들이야 음식 고르는 데 너그럽지만 남자 친구는 다르다. 처음 만난 날부터 미묘한 음식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어떤 음식 취향을 가진 남자와 만나느냐에 따라 행복해졌다 우울해졌다 조울증을 오간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나를 못 느끼게 해주고 떠난 남자는 L이다. L은 내가 감기에 걸려 편도선이 부으면 목 가라앉히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겐다즈 마카다미아 브리틀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들고 집 앞에서 기다릴 정도로 자상했다. 능력도 뛰어나서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왔는데도 겸손하게 한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는 성실한 성격이라 그 까다로운 우리 아버지도 마음에 들어했다. 그런데 그는 못 먹는 음식이 참 많았다. 누린내가 난다고 못 먹겠다는 양고기와 크림 소스로 범벅이 된 파스타는 십분 이해한다. 느끼한 서양 음식을 즐기는 한국 남자는 극히 드무니까. 하지만 그는 토종 음식인 순대와 곱창구이도 역한 냄새가 난다고 못 먹었다. 돼지 기름으로 구운 빈대떡이나 젓갈 냄새가 조금 진하게 나는 총각 김치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래서 데이트할 때 그의 입맛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는 음식점을 골라 다녀야 했다. 칼국수는 꼭 명동에 있는 명동교자 본점에, 냉면은 충무로의 오장동 함흥냉면에 가서 먹어야만 했다. 물론, 이름 난 곳들이라 맛은 끝내줬다. 하지만 그렇게 일 년을 뻔한 음식점만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새로운 음식을 먹어볼 기회는 점점 줄었다. 결국 헤어졌다. 마음이 아니라 혀가 너무 괴로웠다. 

먹는 걸 좋아하는 P와 만난 다음부터 내 혀는 한동안 호사를 누렸다. 대학원생이었던 P는 나와 함께 새로 생긴 음식점을 탐험하고 다니는 걸 즐겼다. 무엇을 먹든 깨끗하게 그릇을 비우는 대식가이면서 못 먹는 게 없었다. 그런데 그는 취향이 없었다. 모처럼 내가 입맛이 영 없는 날, 그가 뭘 먹고 싶은지 물으면 그냥 시큰둥했다. 그때까지 난 그가 나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다니는 걸 즐기는 줄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그는 그냥 참 잘 먹는 남자였을 뿐이었다. 애초부터 그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게 아니라 허기진 배를 채우는 목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새로운 음식점으로 끌고 가면 그냥 따라왔던 거였다. 단순히 먹기 위해서. 그 사실을 안 다음부터 또 먹는 재미가 없어졌다. 그러니까 내가 느꼈던 오르가슴은 거짓이었다. 그냥 아무 느낌 없이 소리만 질러댄 꼴이었다. 가끔은 나도 내 취향과는 상관없는 남자의 취향을 맛보면서 색다른 걸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음식에 대한 집착과 남자에 대한 미련을 함께 잊었다. 그렇게 내 음식 취향의 정체성을 잃어갈 때쯤 S를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S는 대식가였다. 그런데 그는 음식을 즐길 줄 알았다. 나름의 뚜렷한 취향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의 취향이 너무 달랐다는 거다. 그는 밥을 좋아했고 나는 면을 좋아했다. 그는 가끔 3분 카레를 햇반 위에 부어먹는 걸 즐겼다. 나는 샴페인에 도미회를 즐겼다. 너무 다르면 끌리는 법이다. S의 음식 세계는 내가 제대로 탐구하지 못한 새로운 음식의 세계였다. 나는 그 때문에 복매운탕과 간장게장을 처음 맛봤고, 그는 나로 인해 푸아그라와 소프트 셸 크랩을 처음 먹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이젠 그와 나의 취향이 섞여 정점에 달했다. 내가 국밥을 먹고 싶다고 하면 그가 샌드위치를 먹자고 한다. 하지만 이런 건 아주 가끔이다. 보통은 먹고 싶은 음식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S와 나는 매일 함께 느낀다. 입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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