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형의 아내 1

2021.05.14 12:08 26,657 2

본문

                                                          위해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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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은 19년 동안 살아온 정든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삶의 목표였던 대학...대학에만 들어가면 세상일이 민석의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질 것
만 같은 대학
버스 정류장 옆에 '송민석 군의 S대 경영학과 입학을 축하합니다' 이라 쓰인 플래카드
가 널찍하게 걸려 있었다.
이제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통제권을 벗어나 언젠가부터 하늘 닮은, 코스모스 닮은 그
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고 있다.
언제였던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이...

친구와 피 터지게 싸우고 돌아온 민석은 오늘도 할아버지로부터 거센 꾸지람과 함께
종아리에 피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맞았다.
구한말 홍성 군수를 지내신 증조할아버지 슬하에서 엄격한 유교적 전통 속에서 교육을
 받았던 할아버지는 한일 합방이 되고 나서 일제에 강력하게 저항한 증조할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당진으로 이사를 오셨다고 한다.

민석의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골에 서당을 열기도 했던 할아버지는 지금
도 꼿꼿한 양반의 기상을 잃지 않고 계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엄격함은 아직 초등학교 5학년에 불과한 민석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오늘..너희..큰형..온댄다.."
아픈 종아리를 연신 주무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민석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엄마가
조용조용한 어조로 말을 한다.
"와...정말?...."
엄마는 신이 난 듯 밝은 표정으로 묻는 민석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준다.
엄마의 주억거림에 언제 종아리가 아팠냐는 듯 민석이 만세를 부르며 좋아한다.

민석의 큰 형 송 민호는 스물 여덟 살로 민석이 집안의 가장 큰 자랑이었다.
조그마한 시골 동네 어귀에는 형이 학교에 들어갈 때마다 플랭카드가 걸리곤 했다.
00고등학교 수석 입학, S대학교 법대 수석입학 등
법대 수석 입학를 축하하는 플랭카드가 걸린 지 삼 년 만에 또다시 사법고시 최종합격
이라는 글귀가 걸릴 정도로 대단한 형이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법무관으로 군대에 갔다 온 뒤에도 공부를 하여 행정고시까지 합격해
버렸다.
언제나 완고한 표정으로 허옇게 자라난 수염을 쓰다듬던 할아버지도 민호 얘기만 나와
도 훈훈한 웃음을 웃곤 하셨다.

4남 1녀 중의 막내인 민석도 큰 형 민호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약간 창백한 안색에 후리후리한 키, 금테 안경 아래로 날카롭게 빛나는 눈...
나이차이가 워낙 많아 형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지만 막둥이 민석에게 유난스레
 다정하게 구는 큰 형이었다.
형이 올 때마다 사탕을 잔뜩 안아들고 왔고, 그 사탕들은 상당기간동안 민석의 입맛을
 즐겁게 하곤 했다.
비록 할아버지의 벽장 속으로 틀어박혀 어쩌다가 한 번 밖에는 먹어볼 수 없었지만...
.
할아버지가 뒷간에라도 갈라치면 잽싸게 들어가 벽장에 꽂혀있는 쇳대를 풀어내고 훔
쳐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민석은 형이 온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는 대나무로 대충 만든 낚시 대를 들고 개울로
달렸다.
지렁이를 끼워 넣어 낚시를 드리우자 워낙 물고기가 많이 사는 탓인지 간만에 보는 지
렁이에 환장한 탓인지 붕어들이 경쟁하듯 낚시 바늘을 물기 시작했다.
한 참 동안 꽤 많은 양의 붕어를 잡았다.
그 중 굵직한 놈으로만 30여 마리를 물동이에 담고 나머지는 다시 놓아주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대청 마루 밑을 바라보자 낯설게 보이는 세련된 구두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바깥 나들이를 전혀 하지 못했던 민석이 생전 처음 대하는 높은 굽의 여자
구두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형..왔어?..."
반가운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자 할아버지의 미닫이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예의 지적인
 형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하..그래 우리 민석이구나..이 녀석 많이 컸구나"

"민석이는 니 방에 가 있거라.."
민석이 방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할아버지의 엄한 말씀에 몸을 굳혔다.
"예"
울상이 되어 형의 얼굴을 바라보던 민석은 그제야 형의 옆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앉아
 있는 여자를 볼 수 있었다.
열 두 살의 시골 소년 민석이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선녀같은 여자가 그곳에 단아하
게 앉아 있었다.
눈을 화등잔 만하게 치 뜨고 방안을 바라보고 있는 민석의 종아리에 할아버지의 긴 담
뱃대가 날아들었다.
"이노옴...할애비..말이..말 같지..않느냐"
그 소리에 놀라 허둥지둥 방문을 닫았다.
여자는 긴장한 탓인지 그런 민석에게 눈도 돌리지 못하고 앉아 있다.

"그래..형제는..몇인고?"
호기심을 참지 못한 민석이 대청마루에 앉아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엿듣자 할아버
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1남..3녀의 둘째입니다..."
나직하게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그럴 수 없이 청아하다.
"아들이..마지막..인가?..."
"예...."
"허허...아들을..보시느라..고생하셨구만..."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민석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거리자 안방에서 할아버지의 노
여움 가득 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놈...게서..뭐하는..게냐..."
그 소리에 놀란 민석이 도망치듯 달아난다.

'천산가 봐...'
대청마루에서 도망친 민석은 한옥 집 바로 뒤의 등성이 풀 밭에 벌렁 누웠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자 이상스럽게도 그 여자의 얼굴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떠오른다
.
그 여자는 민석이 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
학교 여자 선생님 들, 아저씨들이 주위를 흘깃거리며 도망쳐 나오는 골목에 살고 있는
 작부, 찻집 누나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탓에 12볼트 밧데리를 연결해 놓은 TV에서도 그렇게 예쁘게 생
긴 여자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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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은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포근함을 느끼며 얼핏 잠이 들었다.


코를 간지르는 듯한 기분에 재채기를 하며 풀밭에서 몸을 일으키는 민석의 눈에 허름
한 체육복을 갈아입은 큰 형이 보였다.
"하하..이 녀석..여기서 뭐해?"
"아아..그냥..."
뒷머리를 긁적이며 형을 바라보자 형의 옆에 연한 하늘색의 투피스 정장을 곱게 차려
입은 여자가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여자를 본 민석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어느새 고개를 떨군 민석의 앞에 큰형이 쪼그리고 앉는다.
"인사해...니..형수..될..사람이야.."
"아!"
불연 듯 고개를 들어 새삼스럽게 그녀를 바라본다.
"안녕하세요?...저..혜린이예요..김혜린...잘..부탁드려요.."
하늘을 닮은 천사가 민석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한다.
"예...안..녕..하세요.."
얼버무리듯 말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어색한 인사를 건네자 하늘 닮은 천사는 조용히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소하다가 커다랗게 쌍꺼풀진 눈을 빛내며 민석을 바라본다.
"몇 살이에요?.."
"열...두살..."
"어머...그래요...난..중학생인줄..알았는데..."
말하는 여자의 얼굴을 살피나 실망한 듯하지는 않아 보여 안심을 한다.
"도련님이라고..해야..하나?...후후..앞으로..잘..지내요"
여자의 새하얀 손이 민석의 코 앞으로 다가온다.
기다란 손가락이 매끈하게 뻗은 것이 참으로 예쁜 손이었다.
"뭐해?...형수하고..악수..안..하고.."
그 말에 놀란 듯 민석이 손을 내밀자 여자가 민석의 손을 살며시 잡고 몇 번 흔든다.
말 할 수 없이 부드러운 감촉에 멍한 표정이 된 민석에게 형이 먼저 들어간다고 말 하
고는 여자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멍하니 서 있던 민석이 여자에게 닿았던 손을 코끝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나 붕어
의 비린내만 감지된다.
'에이씨..이럴 줄 알았으면 손을 씻는건데...'
손톱 밑에 까맣게 낀 때와 손에서 맡아지는 비린내에 짜증이 치민다.

저녁 무렵이 되자 민석은 터벅터벅 거리며 집으로 들어섰다.

엄마는 민석이 잡은 물고기를 갈아 어죽을 맛있게 끓여놓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연신
막걸리 잔을 비우시며 기분 좋게 식사를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어른들은 다시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민석은 할아버지의 꾸짓는 듯한 눈초리에 할 수 없이 안방에서 물러나와 조그마한 민
석의 공간에 파묻힐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는 민석에게 형수가 될 하늘 닮은 천사는 함초롬히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친구들에 비해서 건강한 몸을 자랑하던 민석은 활달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눈
만 마주치면 전기에 감전된 듯한 전율과 함께 뭔지 모를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곤 하
였다.
'에이..비영신'
그녀와 나눈 이야기라곤 인사말 한마디 뿐이었다는 것이 생각나자 민석은 그리도 못난
 자신이 너무 싫었다.

학교에 가서도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먼 산만 바라보는 민석이의 눈은 아련히 젖어 있었고, 민석의 첫사랑이랄
수 있는 지금의 담임선생 김 미숙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김혜린 이라 했던가....
이름마저도 이런 시골구석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 고귀해 보였다.
교무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어도, 김미숙 선생님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보면서도
민석의 가슴속에는 어제 그에게 나타난 천사...김혜린 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을 우러르면 하늘 속에 그녀가 나타났고,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면
그 꽃망울 대신 그녀의 영상이 떠올랐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민석은 점심을 걸렀음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힘찼다.
활짝 열려진 나무 대문을 들어서며
"다녀왔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며 툇마루의 섬돌을 바라본다.

아아....없었다.
하늘 닮은 그녀...코스모스 닮은 그녀의 신발은 사라지고 없었다.
부엌에서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나오는 엄마에게 차마 그녀가 떠났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엄마...형..갔어?"
"으응...점심 먹고 바로 갔어...서운한가 보구나..."
엄마의 자애로운 미소를 등에 지고 뒤돌아서 메고 있던 가방을 마루에 팽개치고 그녀
와 처음 얘기 - 인사말에 불과하지만- 를 나누었던 등성이에 올라갔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무덤 옆에 핀 코스모스에도 그녀의
영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민석은 그녀의 고운 자태를 자신의 가슴 한 켠에 깊숙이 묻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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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섣달

시골의 겨울은 도시의 그것보다 더욱 춥고 을씨년스럽다.
그해 12월에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리고 오랜만의 외출을 하셨다.
중간 지점인 천안에서 형수 될 여자의 가족과 상견례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흡족한 표정의 할아버지 얼굴에서 그녀가 정식으로 민석의 가족이 될 것임
을 예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학의 교수이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했다.
부자는 아니지만 부모의 모습을 보면 그 자식을 알 수 있다며 할아버지는 연신 껄껄거
리며 웃으셨다.

민석이 6학년이 되던 해의 3월 15일
할아버지의 강력한 주장으로 시골집에서 전통혼례를 치렀다.
혼례식 하루 전날 내려온 그녀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결혼에 대한 긴장일까...아니면..민석을 잊은 것일까..
민석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선 상큼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혼례식 날
시골 아낙들과 누나들의 질시 어린 눈초리를 온몸에 받으며 곱게 화장하고 족두리를
쓴 그녀가 커다란 상을 앞에 두고 큰형과 마주섰다.
당시 165였던 민석과 거의 비슷하거나 클 정도였고, 계란형의 갸름한 얼굴이 무척이나
 고왔다.
무엇보다도 박 속같이 하얀 그녀의 피부는 가히 압권이라 할 만했다.

혼례식이 끝난 날
시골에서는 의례이 하는 축하식이 열렸다.
동네 총각들은 침을 꿀꺽거리며 대청마루에 다정하게 서 있는 큰 형 부부에게 짓궂은
요구를 계속 했고, 그럴 때마다 부끄러운 미소를 살포시 머금으며 새 색씨다운 몸짓을
 보이면서도 야무지게 요구를 수행해 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더욱 아름다움을 느꼈다.
꾀꼬리 같은 음색으로 '사랑해 당신을'을 부르며 형을 바라보는 눈길을 보며 민석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큰형 내외는 서두르듯 신혼여행 길에 올랐다.
민석과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는 멀어져 갔다.

그랬다...
어린 민석에게는 그녀가 삶의 목표로 자리잡아갔다.
형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리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갔다.

명절 때마다 혹은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생신 때마다 큰형 내외는 다정한 모습으로 우
리 집에 다니러 왔다.
며느리의 노릇을 하느라 재래식 부엌에서 바삐 왔다갔다하는 그녀를 애처로운 듯 바라
보는 외에는 민석에게는 그녀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안녕하세요?...도련님"
"도련님..식사하세요"
등의 형식적인 말이 그녀와 민석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전부였다.

다행히도 민석은 큰형을 닮아서인지 공부를 무척 잘 했고, 할아버지도 그런 민석에게
은근히 기대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지 민석은 그림을 무척이나 잘 그렸다.
군 혹은 도에서 실시하는 각종 미술 대회는 민석의 그림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도
량이 되어 주었다.
화가가 되겠다는 민석이 할아버지로부터 오랜만에 실컷 두드려 맞은 것은 그가 고등학
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림 그리기를 포기한 민석이 우울해 할 즈음
집에 다니러온 형수가 차분한 어조로 민석을 위로했다.
"도련님...꿈을..접지..마세요...지금은..어른들의 반대로..할 수 없겠지만..이담에라
도 꼭..이루세요...제가..응원할께요..."
형수의 그 말은 민석에게 천군만마의 힘을 주었고, 다시 희망의 불꽃을 지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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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컷지만 마른 체형에 창백한 피부 색으로 병약해 보이는 형과는 달리 민석은 외모

에서부터 남자다운 기백이 물씬 풍겨나왔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피부색, 짙은 눈썹, 우뚝 솟은 콧날, 고집스럽게 일자로 다물린
두툼한 입술...튼튼한 허벅지...
180센티가 조금 넘을까 말까하는 헌칠한 키에 75키로 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민호는 탄
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어,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무관심한 눈으로 그네들 사이를 지나가노라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울리곤 했다.

"다 왔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퍼뜩 상념에서 깨어나 차창 밖을 내다보자 시골 태생인 민석이 몇
번밖에 본 적이 없는 한강대교가 보이고 있었다.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민석의 아버지는 대합실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살피고
계셨다.
민석의 눈에 오후 햇살을 등에 지고 두꺼운 스웨터를 걸친 형수의 가녀린 몸이 보였다
.
형수도 민석을 발견한 듯 손을 들어 흔들어 댄다.
"아버지..저기.."
그제서야 형수를 발견한 아버지가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안녕하세요...아버님...도련님두..."
대충 인사를 마무리 짓고 아버지와 함께 육교를 건너 택시를 타고 신대방 동에 자리잡
고 있던 큰형의 아파트로 들어갔다.

큰 형의 집에는 두 번째 와 보지만 이 집은 처음이었다.
깔끔한 아파트의 모습이 신기해 이리저리 둘러보는 민석에게 살포시 미소하며
"도련님...이제..잘..지내요..사이좋게..." 한다.
민석과는 열 한 살 차이니까 올해 서른이 된 형수는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어려보이는
 인상이었다.
아이를 낳지 않아서일까...
애타게 장남의 득남을 기다리던 부모님은 그 원인이 큰형의 무정자증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손주에 대한 욕심을 버린지 오래였다.

"도련님..방은..이 쪽이예요..."
형수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자 하늘색으로 칠해진 나무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버지가 일어나 방문을 열자 엉겁결에 민석도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너른 방에 침대하나, 책상, 작은 옷장이 전부였지만 형수의 고운 손길이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듯 하여 무척이나 설렌다.

찻잔을 거실 식탁에 내려놓고 부르는 형수의 목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민호씨..대학원에 들어간대요.."
"응?"
"공부가..하고..싶대요..그래서..올해부터..야간..대학원에 등록한다고..."
"허어...그 녀석..참..."
민석이 보기에는 아버지가 말려 주시기를 원하는 듯 했지만, 혀를 차는 아버지의 표정
에선 대견스러워 하는 기색이 묻어 나왔다.
"하겠다면...도와야지...그..녀석은..어렸을...때부터..공부..욕심이..남달랐지.."
아버지의 흐뭇한 표정을 확인한 형수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치는 것을 민석은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아버님...이젠..마흔..인데..좀...저도..사는..거..처럼..살고..싶어요..."
"그게..무슨..소리냐?"
"민호씨는..집안에만..들어오면...말이..없어요..또..형광등 하나를..갈아..달라고..
해도..며칠..째..대꾸도..없어요..."
"남자란 모름지기...그래야..하는..거야.."
형수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에게서 절망을 느꼈음인지 형
수는 나직한 한숨을 토해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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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조금 넘었을까...

오랜만에 차를 타서인지 피곤함을 느낄 무렵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창백한 얼굴을 붉게 물들인 형이 피곤함에 지친 듯 비척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여보...아버님도..오셨는데..좀..일찍..들어오시지..."
"어?..그래...민석이도..같이..왔나?"
"네..."
방안에 누워 있던 민석이 문을 열고 나오자 형이 반갑게 어깨를 끌어안는다.
"하하..이 녀석...이제..대학생이구나...축하한다...아버지는?"
"주무셔요..."
"아..그래!...너...이리와..형하고..술..한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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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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