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내 딸의 몸 그속의 아내 상

2021.10.03 09:49 16,763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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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의 몸 그속의  아내 

1장. 프롤로그



설마 그것이 아내의 마지막 모습일지는 몰랐다.

아니 모르는 것이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느 누가 평범한 일상처럼 집을 나서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세상에서 마지막 보는 모습일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세상에는 많은 이들이 가족이나 연인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었을지 모르지만, 그 누구도 그들

의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보내리라고 원치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슬픔이 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의 소중함은 이렇게 하여 더욱 상실감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진우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보냈다.

그때가 1997년 1월이었다.


아내는 평소에는 여리고 수줍은 타입이었지만 그 속맛은 정말 촉촉한 여자였다.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가기 전날 밤 진우는 그 어느 때보다 아내의 몸을 갈구하고 있었다.

뜨겁게 농익은 아내의 몸도 어느 때보다 그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을 했고, 그녀의 중심은 많

은 물을 흘려 시트를 적셔주었다.

그러나 진우는 천천히 아내의 몸 속으로 들어가 살짝 살짝 터치하며 그녀를 더욱 애타게 만들어 

주었다.

"하아아.. 아으으응.. 여..여보.. 제 제발..."

한참을 공을 들인 그는 아내의 몸이 충분히 달구어졌다고 판단이 되자, 본격적으로 거센 힘을 

몰아 그녀의 몸으로 휘몰아 쳤다.

"아아아.. 아아흐응.. 으흑.. 아아앗.. 나 나.. 아아아앙.."

"하아.. 하악..  으으윽.."

방안은 이미 두 사람의 거친 신음소리로 가득했고, 마침내 그들은 절정의 폭풍에 휘말려 버렸

다.

"으윽.. 아.. 수진아.. 내 작은 입술.."

그가 절정에 오르며 아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얼마 후, 탈진한 듯 엎드려 가늘게 숨을 고르고 있는 아내의 땀에 젖은 등허리를 바라보

면서 진우가 물었다.

"얼마나 강릉에 있을 예정이야?"

"으음.. 일단 가서 아버지 얼마나 편찮으신지 좀 보구요.. 한 3~4일 있을지 몰라요."

아내의 친정은 강릉이었다.

"장인어른 많이 편찮으시면 무리해서 일찍 올 필요는 없어.. 여기 걱정은 말고.. 그나저나 나도 

시간 내어서 가봐야 하는데.."

"아니예요. 어차피 회사에서 그 정도만 휴가를 얻었고요, 지현이 개학도 얼마 안 남았잖아요.. 

좀 있으면 설날도 되니 그때나..."

아내는 아직 땀에 젖은 홍조 띈 얼굴을 배개에 파묻은 채, 졸린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런 아내를 보자 갑자기 다시 욕구가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밤새도록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눈앞에 있음에도 아내의 몸이 그리웠는지?

어쩌면 앞일을 예견했기 때문일까?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아내가 돌아오기로 한 날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 늦게 도착할거라는 전화에 혼자 한가로운 저녁을 보내던 7시쯤, 집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진우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진우는 전화를 끊고서도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는 듯 거실바닥에 주저 않아, 그저 그렇게 망연

자실했다.

그런 그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TV를 켜자 저녁 뉴스에는 사고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영동고속도로 횡계 부근에서 차선을 넘어온 대형 탱크로리와 충돌한 고속버스 사고의 뉴스였다.

진우는 그저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흉한 몰골로 파손된 차량과 아직도 간간히 타오르는 불길, 분주히 움직이는 구조대원

들과 경찰들, 앰뷸런스의 경광등 불빛, 그리고 무심하게도 퍼부어 대는 눈발이 보여지고 있었

다.

"사고의 사망자들과 부상자들은 현재 급히 강릉시내의 강릉의료원과 고려병원에 나뉘어 후송되

었습니다.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TV에서는 기자가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를 하고 있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듯 그저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진우의 눈에 비로소 한줄기 눈물

이 흐르기 시작한 것은, TV화면 하단에 흐르는 피해자 명단 자막에 아내의 이름이 보였을 때였

다.

'이수진. 여. 35세. 서울 강남구 양재동.'

그래 아내였다.

아내의 이름은 이수진이었다.

수진이. 이제는 다시 직접 불러볼 수 없을 이름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TV 화면을 얼룩져 보이게 만들었다.

자꾸만 눈물을 훔쳐내었지만 계속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진우가 다소나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화면의 명단에 딸아이의 이름도 올

라있는 것을 발견한 후였다.

서지현 . 여. 12세.

하지만 그것은 다행히도 부상자 명단이었다.

뉴스에는 중태라고 나왔지만, 지금 진우는 그것마저도 감사했다.

그는 그대로 집을 뛰쳐나와 차를 몰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진우는 앞으로 그가 마주치게 될 또 다른 슬픔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2장. 운명의 시작.



차를 몰고 집을 나설 때 진우는 처가에 전화를 해서 출발한다고 알려주었다.

이미 처가에서는 처남이 현장으로 출발했다고 하고, 그렇지 않아도 편찮으시던 장인어른은 딸의 

사고소식을 접하고 쓰러지셨다고 한다.

처가에 전화를 한 뒤에 그의 머리 속에는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새삼스레 아내 

수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우와 수진은 처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었다.

수진은 그가 졸업 후 첫째 직장인 한 영상 프로덕션에 다닐 무렵, 구성작가 보조 아르바이트로 

고용되었던 국문과 3학년 여학생이었다.

진우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를 잊지를 못한다.

여려 보이던 얼굴에 가냘픈 체구의 그녀를 직속 상사가 제작회의에서 소개시켜 주던 때를..

그때 수진은 진우가 FD로 작업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으므로 둘은 자연스레 가까워졌고, 

진우를 사랑하게 된 그녀는 졸업도 하기 전에 진우와 결혼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딸이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것도 작은 회사에 다니는 별로 장래

성 없어 보이는 남자를 데리고 왔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매우 반대를 했었다.

일찍 아내를 여의고 애처로운 마음에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었던 만큼 기대가 컸었기 때문이

다.

그러나 수진은 그 여려 보이던 외모와는 달리 단호했었고, 집안에서 허락을 해줄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진우가 그런 수진의 모습에 놀라움을 느끼고 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낮게 말씀하시며 

허락을 해주셨다.

"너도 니 에미를 닮았구나."

서울로 돌아오며 진우가 수진에게 묻자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엄마도 저처럼 평소에는 약하신 분이었데요. 하지만 꼭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정말 강한 모습을 보여주셨대요. 사실은.. 아빠와 결혼할 때도 그러셨다네요.."

그러면서 조용히 눈시울을 적시며 진우의 품에 안겨 있다가, 살짝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나.. 나같은 딸 낳으면 어떻게 하죠.."

그래서였을까?

수진이 낳은 딸 지현이는 정말 그녀를 쏙 빼 닮았다.

딸아이는 진우가 수진의 남은 학업을 배려해서 졸업 때까지 미루어준 임신이었다.

수진은 빨리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지만, 장인어른의 마음을 생각해서 그가 고집했었다.

딸 지현이는 정말 어여쁜 아이였다.

수진을 쏙 빼 닮은 외모에 성격까지도 지 엄마를 닮았다.

그래서 어느 때 보면 둘은 모녀지간이 아니라 자매지간처럼 다정했다.

둘 사이에 무슨 비밀이 그리 많은지 가끔 진우가 소외감에 괜시리 질투가 날 정도였으니.

그런 지현이도 이제 좀 컸다고 제법 여자애 티가 나고 있었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갈 나이인데 벌써 가슴이 조금 봉긋해지는 것도 같았다.

한 번은 오랜만에 아빠랑 같이 목욕하자고 하니 "아이.. 아빠는 부끄럽게.." 하며 아빠 앞에서 

새침한 태도를 보여주어 미소를 자아내게 하곤 했었다.

그래서 "요즘 애들은 이맘때 한다는데.. 혹시나?" 하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직 `초경'은 겪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딸내미를 데리고 같이 목욕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진우는 왠지 서운해지기도 

하고, 또한 점점 아름다워지는 아내의 분신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단란했던 기억들은 이제 모두 안타까운 추억이었다.


진우가 차를 몰고 가는 도중에 처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아내의 시신과 딸아이는 강릉시내의 강릉의료원으로 이송되었다며, 그리고 직접 오라는 연

락이었다.

평소에는 서울에서 서너 시간이면 될 거리였지만, 경황이 없는데다가 눈발이 세차는 등 날씨가 

궂었으므로, 그가 강릉에 도착한 것은 새벽이 되어서였다.

진우는 몹시 피곤했고 배가 고팠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차를 병원 주차장에 정차를 시킨 뒤 처남에게 연락을 하였다.

주차장에는 이미 방송국과 신문사의 차량들이 눈에 띄었다.

잠시 로비에서 두리번거리던 그는 곧 저 앞에서 걱정스런 얼굴의 처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님.."

8살 손아래의 처남은 자신을 늘 형님이라 불렀다.

"아.. 처남.."

"정말이지.. 어떻게 이런 일이..  우..  흐흑.. "

처남이 말을 잇지 못하고 낮게 흐느꼈다.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가면서 그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제발 이것이 꿈이기를. 악몽이기를.

그러나 하얀 천 아래에서 드러난 얼굴은 분명 사랑하는 아내 수진이었다.

진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어라 표현을 할 수 없는 그런 기분들이 복받쳐 올랐다.

그저 차갑게 굳어버린 그녀, 수진이의 얼굴만을 손으로 쓰다듬을 뿐이었다.

하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감촉은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잔인한 사실만을 일깨워줄 뿐이었다.

순간 진우가 주저앉으며 오열을 했다.

"흐 흐흐흑.. 아 아..  여보.. 수진아.. "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저 숙연히 같이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사랑하는 아내 수진을 보냈다.

아니 보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형님.. 그만 고정하세요. 지현이한테도 가보셔야죠."

처남이 아직 딸 지현이가 살아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 그래.. 지현이가 있었지.."

겨우 정신을 차린 진우는 처남의 안내로 아이가 누워있는 병실로 갔다.

지현이는 아직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다.

"지.. 지현아.. 누 눈을 떠 봐.. 아빠가 왔어.."

그러나 딸아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이 산소호흡기를 입에 댄 채로 누워있기만 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깨어나려면 좀 경과를..."

옆에서 의사가 뭐라 설명하고 있었지만 거의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다만 딸아이가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온몸에 흐를 뿐이었다.

그렇게 진우는 중환자실 밖에서 딸 지현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지현이가 깨어난 것은 그가 의자에 기대어 깜박 잠들어 있던 때였다.

아이가 깬 것을 발견한 간호사가 그를 깨워주었다.

급하게 뛰어가 보니 지현이는 작게 눈을 뜨고 산소호흡기에 가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 지현아.. 아빠야..  나 나.. 알아보겠니..?"

아이의 고개가 작게 끄덕거렸다.

"뭐..뭐라고 말 좀 해보렴.."

그러나 딸아이는 뭐라 말하려 하지만 매우 힘든 듯 소리가 나지를 않았다.

"응.. 뭐 뭐라고..?"

그때 담당의사가 이야기를 하자며 그를 바깥으로 불렀다.

의사는 지현이가 사고로 인한 쇼크로 일시적인 실어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지현이는 한동안 말을 잃고 누워 있어야 했고,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진 후 다시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그는 회사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해 휴가를 얻고,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딸아이의 학교에도 연락을 해주었다.

처가에도 잠시 다녀왔는데, 장인의 얼굴은 몹시 야위어져 있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아내의 장례를 치렀다.

아직 버스회사, 사고차량회사와의 사고보상문제가 남아있는 데다, 이 때문에 사고유가족대책협

의회가 결성되었지만, 그로서는 아내의 죽음을 가지고 길게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먼저 장례를 

치렀다.

지현이는 조금씩 회복이 되는지 진우의 얼굴을 보면 반가운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안 나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딸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딸아이는 이미 짐작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 슬픈 듯한 표정을 보면.

아마도 간호사들끼리의 대화나 친척들의 대화에서 짐작을 했으리라.


그리고 지현이가 다시 말문을 연 것은 아이가 깨어난 지 일주일 후였다.

침대 옆에서 아이를 돌보다가 깜박 엎드려 잠이 든 진우는 잠결에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이 느껴

졌다.

그래서 무심코 잠이 깬 그에게 바로 지현이가 눈물을 흘리며 조금씩 말을 하고 있었다.

"아.. 저.. 저.. 마 말이 나와요.."

"아..! 지 지현아..  이..이제 말문이 트였구나..."

그는 기쁜 마음에 딸아이를 꽉 껴안았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아 아.. 다행이야..."

그러나 진우는 곧 딸아이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의 말에 놀라 그대로 동작을 멈추어야 했다.


"여..여보..."


진우는 지금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딸아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여보.. 저 저.. 수진이예요.. 당신 아내.."

그가 화들짝 놀라 딸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

다.

"지.. 지현아.. 어찌된 거냐?  너..너 괜찮니..?"

진우의 얼굴에서 새파랗게 핏기가 가셨다.

혹시 아이가 사고의 쇼크로 정신이 이상해 진 것은 아닐까?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진우의 표정을 보며 딸아이가 다시 작게 말문을 열었다.

"저.. 미친 것 아니예요.. 저.. 수진이가 맞아요.."

"........"

"지금 어떻게 된 것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지금 내가 왜 지현이의 몸인지..?  하..하지만 나는 

당신 아내 수진이에요.."

"...마 맙소사.."

진우는 지금 딸아이, 아니 자칭 아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누가 상식적으로 이런 말을 믿겠는가..?

그는 담당의사에게 이야기를 하여 딸아이가 정신적인 충격으로 문제가 있는지 정신과 진료를 부

탁하였다.

그러나 별 이상이 없다는 결과뿐이었다.

물론, 딸아이는 남들 앞에서는 자신이 수진이라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앞에서만 수진이라고 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지현아.."

"여보.. 제발 믿어주세요.. 저 저.. 수진이 맞아요.. 당신 아내.."

"허.. 이거야... "

"아무래도 제 영혼이 지현이 몸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지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렇게 이야기하던 딸아이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누가 믿겠니..? 네가 엄마라고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잖니.."

"그 그치만..  저.. 그럼.. 이런 것들 기억나세요..?  당신과 나 예전에..."

그리고 딸아이의 입에서 진우와 수진이만이 간직했다고 생각한 둘만의 비밀들이 흘러나오기 시

작했다.

두 사람이 결혼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 그리고 아직 지현이가 어렸을 때 있었던 에피소드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진우는 등골에 왠지 모를 스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호 혹시.. 설마..?  에이.. 아 아니야..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가...'

"지현아.. 흠 흠.. 그 그래.. 그런 이야기를 알다니 놀라운데.. 하지만.. 평소에 너와 엄마는 

서로 많은 것을 터놓는 사이였어.. 그러니 언젠가 엄마한테서 들었을 수도 있지.."

그는 동요를 애써 감추면서 침대 가에서 일어났다.

'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우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병실을 나가려 주머니에서 담배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곧이어 등뒤에서 들려온 말은 그를 꼼짝못하고 멈추어 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신은 늘 나를 '작은 입술'이라고 불러주지 않았어요..?"


순간 진우의 가슴은 쿵쿵 떨려오기 시작했다.

'작은 입술'은 진우가 수진과의 섹스에서 절정에 오를 때면 항상 그녀에게 불러주던 애칭이었

다.

"그 그걸.. 어 어떻게 저 아이가..?

아무리 아내가 딸과 터놓고 지냈다고 해도 어린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 리 없었다.

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뒤돌아서 조용히 딸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 설마.. 진짜로..!"

그것이 새로운 운명의 시작이었다.



3장. 둘만의 비밀



딸아이의 학교 문제도 있고 진우도 더 이상 직장을 비울 수가 없어, 아이를 강릉의 병원에 놔두

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처가와 상의를 하여 서울의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때 이미 두 사람은 남 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사이가 되었다.

"저.. 여보.. 아무래도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해야겠어.. 남들이 알면 부녀간에 미쳤다는 소

리 밖에.."

서울로 오는 차안에서 진우가 그녀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 그래야 하겠지요.. 일단 겉으로는 부녀지간으로 해야겠죠.."

진우는 그 날 이후 딸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믿게 되었다.

정말로 딸아이의 몸에 있는 영혼은 지현이가 아니고 아내 수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진우는 지현으로부터 들은 그 말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아직 반신반의를 했었다.

어떻게 아내의 혼이 딸아이의 몸에 들어갔다는 그런 황당한 소리를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비록 이제 그런 의심이 흔들리게 되었다 할지라도,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확신이 필요

했다.

그래서 지현이를 간병하는 와중에도 짬을 내어 강릉의 시립도서관을 찾아가 관련 서적을 뒤적여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심령과학 등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책들을 통해서 그는 '빙의'라는 현상에 대

해 알게 되었다.

육체를 상실한 인간이나 동물의 혼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서 그의 두뇌를 점령하여 

여러 가지 이상한 행동을 시키는 것을 '빙의현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사례들이 전세계에 걸쳐 무수히 존재하며, 많은 전문가

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지현이가 주장하는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들을 알아가면서 진우는 왠지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다.

어쩌면 정말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 날 지현이가 한 이야기들을 설명하려면 이런 경우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아이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만약에 정말 아내 수진의 혼이 딸아이의 몸에 들어온 것이라면, 그렇다면 딸 지현이의 영혼은 

어떻게 된 것일까?

책들에는 `빙의'란 일반적으로 타인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들어온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지현이의 영혼도 그녀의 몸 속 어딘가에 살아있을 수 있지 않는가?

그러다 아내의 영혼이 딸의 몸에서 사라지면 지현이의 영혼은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그러나 기존의 책들만으로는 속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진우는 전문가들에게 직접 상담을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신분이 노출되었을 경우 딸아이가 당할 곤란을 고려하여 고민하다가, 인터넷에 개설된 `

심령과학 연구회'란 단체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상황을 익명으로 상담하였다.

그곳은 관련 학자들이 모인 학술단체로 초자연현상에 대한 웹진도 준비중인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진우의 경험에 상당한 관심을 표했다.

그들에 의하면 지현이의 현상은 `빙의'가 분명했다.

일반적으로 서로 애착심이 크고 파장이 맞는 가족들간에 빙의가 잘 발생한다고 했다.

아마도 사고 당시 엄마의 딸에 대한 원념이 죽은 엄마가 빙의를 한 요인이 되었을 거라 그들은 

분석했다.

그러나 딸의 영혼이 살아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그들은 판단을 유보했다.

왜냐하면 일시적으로 빙의가 되어 두 사람의 혼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에 맞는 신체적, 

심리적 행동양식을 보여주는데 반하여(일반적으로 귀신에 들렸다는), 지현이는 초기 실어증에 

걸린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이상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지현이의 영혼은 사고 당시 죽었고, 대신 그 몸을 엄마의 영혼이 차지했을 가능

성도 크다고 그들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이야기만 들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직접 아이를 보고 싶다

고 `심령과학 연구회' 측에서 제의를 했다.

그러나 진우는 그럴 경우 자칫 지현이가 대중의 호기심에 노출될 수 있음을 우려하여, 제의를 

거절하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이미 그 정도로도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우는 이제 딸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믿을 수 있었다.

아직 지현이의 영혼이 죽었는지? 아니면 깊숙이 숨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내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확신이었다.

이전 같으면 코웃음을 치며 무시할 이야기였지만, 아내를 잃은 슬픔에 그렇게 믿고 싶어서였을

까?

그런 자신의 희망이 반영된 것일지는 모르지만, 진우는 이제 그 사실을 믿게 된 것이다.

남들은 그런 자신을 알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현이의 영혼은 정말 죽은 것일까? 혹시 몸 안에서 느껴지는 것 없어..?"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역시 지현이의 혼은 죽은 걸까? ..... 하지만 만약에 살아서 혼이 돌아온다면.. 그 때는 당신

이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글쎄요..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당분간.. 그런 것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그래... 그러는 것이 좋을지도 몰라..."


하지만 둘이 그렇게 동의했다고 해도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다.

우선 호칭의 문제가 있었다.

일단, 진우는 그녀에게 그냥 `지현'이라는 딸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남들 앞에서는 `지현', 그들끼리는 `수진'이나 `여보'라고 부르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 실수가 많아서, 그만 얼떨결에 처남 앞에서 `수진'이라고 불러

버리고 만 일이 생겼다.

진우는 "드디어 매부도 슬픔에 실성을 했구나!"라는 서글픈 표정의 처남을 보면서 정말이지 "아

차!" 싶었다.

겨우 그럭저럭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그는 이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습관을 들이기 위하여 그들끼리도 진우는 `수진' 대신 `지현'이라는 딸 이름으로 부르

고, 수진이도 `여보' 대신에 `아빠'라고 부르기로 했다.

"당신을 아빠라고 부르니 좀 이상하네요.."

그녀가 살짝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어쩌겠어.. 주변에서 혹시라도 알면 큰일 날 테니까.. 작은 실수도 할 수 없어.."

진우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아직 어린 딸아이의 입에서 딸의 목소리로 `여보', `당신'이라 불

려지는 것에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리고 입원으로 인해 학교에 많이 빠지게 되었지만, 학교 문제도 남아 있었다.

만약에 지현이의 영혼이 살아있어서 중간에 돌아온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단 아내가 

클 때까지는 적어도 10년간 딸 지현이로서 교육을 마쳐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아니 교육뿐만 아니라 어쩌면 평생을 딸로서 인생을 살아야할지 모른다.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외국으로 이민을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떻게 하지..?"

"일단은 학교는 지현이로 마쳐야겠죠.."

"잘 해낼 수 있겠어?"

"괜찮아요. 잘할 수 있어요. 평소에 지현이 학교생활 이야기 많이 들었고, 친구들도 다 아는 걸

요."

"그 그래..?"

눈앞의 여자아이는 이제 그에게 있어 딸이자 아내인 지현이가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기묘한 부녀이자 부부지간이 시작되었다.


지현이는 집인 양재동에서 비교적 가까운 영동세브란스병원에 입원시켰다.

다행이 경과가 좋아 새학기가 시작될 즈음에는 퇴원을 해 통원치료로도 가능하게 되었다.

지현이의 퇴원 날 진우는 그녀를 집안에 데리고 들어오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그 날 평범하게 집을 나선 가족 두 사람 중 한 명만이 이제서야 겨우 돌아온 것이다.

진우는 지현이가 피곤해 하는 것 같아 안방의 침대에 눕혔다.

일단, 부부니까 방은 같이 쓰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봐도 사고로 엄마를 잃은 어린 딸과 아빠이니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

다.

지현이를 눕혀 안정을 시킨 뒤, 진우는 혼자서 딸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고 후 왠지 내키지 않아 그동안 한번도 들어오지 않은 방이었다.

먼지가 좀 쌓인 방에는 이제 어쩌면 영영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딸아이의 흔적들로 가득했

다.

딸아이의 침대, 책상, 가방, 많은 책들, 그리고 아이가 아끼던 인형, 그렇게 이어지던 그의 시

선은 문득 열쇠로 잠겨져 있는 일기장에 멈추어 섰다. 

그는 열어볼 수 없겠지만, 그 속에는 딸아이의 많은 추억이 담겨있을 것이다.

딸아이는 꿈이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일기장은 일기뿐만 아니라 스스로 지은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독서광이었던 아이의 취미나 글 솜씨, 상상력,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로의 꿈은 역시 작가지망생

이었던 수진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으리라.

국문과를 나온 수진이가 자신 때문에 꿈을 접고, 맞벌이를 위해 취직한 것이 안타까웠던 진우는 

그래서 더욱 딸의 꿈을 지켜주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그는 갑자기 서글픔이 복받치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흐흐흑... 지 지현아..."

그렇게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울고 있을 때, 진우의 뒤에서 자그마한 몸이 따듯하게 안겨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현이.. 아니 아내였다.

그녀도 진우의 등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죽여 자그맣게 울먹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후.

이제는 아주 몸이 작아진 아내를 안고 그는 딸아이의 방을 나왔다.

한참을 울던 그녀도 어느덧 피곤함에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진우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는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딸아이인 지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육신 속에는 믿기 힘들게도 아내인 수진이의 영혼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아내로서의 수진이가 아닌, 사실은 아내이지만 사람들에게 딸로서 보여지는 지현이

가 되어 있었다.

이 작은 머리 속은 지금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이렇게 뒤바뀌어진 운명을 어떻게 감당해내고 있을까?

이 어린아이의 몸이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할 텐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지현이를 품에 꼭 안아 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풋풋한 어린아이의 젖내가 풍겨 나왔다.

순간 진우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정말 이 어린아이가 딸인 지현이가 아닐까?

이 속에는 정말 아내인 수진이가 들어있는 것일까?

그는 이미 지금 안고있는 지현이의 영혼이 아내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혼이 사라졌다는 

딸아이의 따듯한 육신을 안고있는 진우의 마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지현이가 퇴원을 하고도 한동안 진우는 이런 저런 일 처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하나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현이가 다시 학교에 등교를 하고, 사고 보상 문제가 합의되고, 밀린 직장 일에서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 있게되자, 그는 곧 크나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현재 그에게 있어 딸인가? 아내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딸의 육체를 가졌지만, 아내의 영혼을 가졌다.

물론 지금은 영혼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아내로서 인정을 했지만, 몸은 분명히 아직 어린 딸의 

육체이다.

따라서 그들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영유할 수 없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그들은 부녀지간으로 살아야 하지만, 집안에서도 둘의 부부생활은 사실상 힘들었

다.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되려면 성생활이 있어야 하지만, 아무리 아내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하더

라도 결국에는 어린 딸의 몸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 딸의 영혼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에 아내와 성관계를 가진 후 딸의 영혼이 되돌아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그때 그들이 아빠가 딸의 몸을 범했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진우는 한동안 이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일이 처리되고 안정을 찾자 바로 부부간의 성생활 문제가 난제로 돌출이 되었

다.

하지만 아직 아내 쪽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진우가 먼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막상 아직 어린아이의 육체를 가진 그녀를 보면 언제 

영혼이 돌아올지 모르는 어린 딸의 몸이라는 자각이 들어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런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섹스는 무리이겠지..'

더구나 덜컥 임신이라도 해버리면 그야말로 큰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어린 지현이로 살아가야 하는 아내로서는 정말 곤란한 것이다.

아마 아내도 이런 생각 때문에 아예 성생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지 몰랐다.

결국 진우는 속으로 끙끙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큰 일을 겪은 후인데 그녀를 놔두고 외도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4월 들어 지루하게 끌줄 알았던 운송회사와의 사고보상문제가 급진전하면서 비교적 원만하게 타

결이 되었다.

사고유가족대책협의회가 선임한 변호사가 유능하였는지 유가족들로서는 만족할만한 액수로 타결

되었다.

여기에 보험금 등 이런저런 것들로 진우에게는 상당한 액수가 들어왔다.

그는 그 돈들과 이전부터 준비해오던 자금들을 모아, 그동안 다니던 프로덕션을 그만두고 독립

하여 홍보영상 프로덕션을 차렸다.

이것은 이전부터 그가 계획했던 것이고, 아내와 딸의 바램이기도 했다.

당초 예정보다 훨씬 독립이 앞당겨진 것이지만, 그는 이 보상금이 불행했던 사고가 그를 위해 

남겨준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의 회사에는 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PD와 부하직원들이 같이 따라와 주었다.

진우는 이렇게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사고의 슬픔을 잊으려 노력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슬픔에 젖은 겨울과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일찍 퇴근한 진우는 문득 집 앞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현이가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듯 재잘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꺄르르 웃고 있었다.

"지현아.."

진우가 지현이를 불렀다.

"어.. 지현아.. 너희 아빠이시네.. 아저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저씨.."

친구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인사를 했다.

물론 지현이도 반갑게 달려와 안겼다.

"아빠..."

"으응.. 그래.."

"잘 가 얘들아.."

"응.. 지현아.. 내일 꼭 놀러와.."

현관문을 들어서며 진우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응.. 내일 현주네 집에 놀러가기로 했거든.."

활짝 웃는 지현이를 보며 진우는 문득 아내가 정말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몸에 맞는 말투에 적응하기 힘든 듯 상당히 어색했던 태도와는 달리, 불과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누가 보아도 어린아이의 행동과 말투 그대로였다.

정말이지 놀라운 적응이 아닐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를 개운치 않음이 느껴졌다.

"정말 요즘 당신을 보면 지현이가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져.."

진우가 가볍게 웃으며 슬쩍 이야기하자 지현이는 약간 당황한 듯 멈칫거리다가 살짝 웃으며 되

물었다.

".............  어머.. 왜요?"

"정말 당신 말투나 모든 것이 아이 같다니까.."

"그 것은.. 저는 정말 애를 써서 적응하는 거라구요.. 자연스럽게 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 하지만 그렇더라도 정말 자연스러운 걸..?"

"그 그래서 싫어요?  그냥.. 나.. ......  앞으로 긍정적으로 살기로 했을 뿐 인 걸요..  어차

피 이렇게 된 것을..  처음에는 무척 혼란스러웠는데.. 그냥 인생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 인생의 주인인 지현이가 돌아오면 미안하지 않게 훌륭

하게 살아야지 하구요...  나.. 꼭 작가가 될 거예요.."

진우는 순간 그녀의 그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

"아.. 그 그래.. 미안해..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리고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렸다.

그러자 지현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풀려는 듯 진우의 팔에 매달렸다.

"그리고요.. 아빠.. 자꾸만 나를 `당신',`여보'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안돼요.. 그러면 습관을 

들이기로 한 것 안 되잖아.. 피.. 처음 습관들이자고 한 건 자기면서.. 나는 이렇게 아빠라고 

부르면 노력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상하지만..."

지현이의 말 그대로였다.

밖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집에서도 지현이라고 불러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그러나 이 

작은 몸 속에 아내가 들어있다 생각하면 자꾸만 `당신'이라 부르게 된다.

"하지만.. 당신을 지현이라 부르면 아무래도 아내라는 느낌이 안 들고 딸이라고 생각되는 걸.. 

지금 당신은 지현이의 모습 그대로이니..  하지만.. 노력을 해야겠지.. 그래.. "

진우는 지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는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과연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이 들고 있었다.

어차피 아내는 그녀의 말대로 딸 지현이로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현재 부부인 것이다.



4장. 갈등의 시작.



지현이가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진우는 그날 회사 일을 일찍 마치고 집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그는 지현이가 요즘 들어 다시 주방 일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

다.

퇴원한지 한동안은 아직 사고의 후유증도 있고, 새로 얻은 몸에 적응하지 못해서인지 주방에도 

적응하지를 못했었다.

요리 맛도 이전 같지 못했고, 사소한 실수도 많았다.

아무래도 아직 아이의 몸을 가지고 주방 일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우는 그녀의 몸이 다 완쾌하기까지는 그가 주방 일을 해주던가, 식사를 시켜먹는다던

가 하였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전만은 못하지만 음식 맛이 다시 나고 있었다.

"이야.. 여보.. 아니 지현아.. 이 찌개 정말 맛있는데.."

"어머.. 정말요.. 헤헤.. 기뻐라..."

진우는 정말 아이같이 해맑은 그녀의 미소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지현이가 무언

가 할 말이 있어 머뭇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현아.. 혹시.. 무슨 할 말 있는 거야?"

"저 저어기..... "

"응?  뭔데... "

"........ 아.. 저어기..."

"호오.. 뭘까..?  정말 궁금해지잖아.."

"오늘요.. 그 그거 처음 했어요.."

"응? 그거라니.."

"아이 참.. 그거요..."

"내참.. 그냥 그거라면 어떻게 알.. ...! 호 혹시.. 초경..?"

지현이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작게 끄덕거렸다.

"여 여보.. 당신 정말이야..!"

진우는 솔직히 놀라웠다.

생각해보면 이제 딸아이의 몸이 초경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아내의 혼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하 하 하...."

"아이 참.. 왜 이렇게 웃어요.. 창피하게.."

"재미있잖아.. 지현.. 아니 수진씨.. 태어나서 초경을 두 번 겪은 소감은 어때요..?"

".....!  모 몰라요..  그런 것 알게 뭐야.. 너무해요.. 짓궂게 자꾸만 놀리고 있어..."

그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 식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음 짓던 진우는 문득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이제 딸아이의 몸도 점점 여자가 되어 가는구나.

그러고 보니 알게 모르게 지현이의 몸이 달라져 가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 언듯 언듯 엿보이던 가슴도 조금씩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고, 그녀의 매끄럽게 

뻗은 하얀 두 다리가 받치는 귀여운 엉덩이도 점점 도톰하게 살이 올라갔다.

앞으로 지현이의 몸이 아이의 몸에서 점점 성숙한 몸으로 바뀌어 갈수록 그는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어린아이의 몸을 범할 수 없다는 명분 하나가 사라지고, 오히려 아내의 영혼을 담은 아름다운 

육체를 마주해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초경이라.. 이제 저 몸도 여자가 되가는구나...'

그는 어느새 자신의 몸 속에서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욕망이 다시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을 느끼

고 있었다.

아내는 이제 다시 어린 처녀가 된 것이다.

진우는 솔직히 망설여졌다.

`지금쯤은 슬슬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야.. 오히려 이제는 임신의 위험이 커진 거잖아.. 어차피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인데.. 

구태여 이야기해볼 필요가.. 어쩌면 수진이도 애써 참고 있을지 모르는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내와는 별도로 딸의 몸이 초경을 했다는 것에 대한 아빠로서의 대견함도 

들었다.

아마,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수진과 함께 같이 모여 기뻐해 주었을 텐데 하는 어떤 안타까움이

었다.

과연 아내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자신이 직접 딸의 몸으로 딸을 대신하여 초경을 경험한 기분이..?

어쩌면 매우 착잡하고 우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자신의 행동이 너무 경솔했다고 진우는 자책했다.

`그래.. 오늘은 이야기하지 말자..'


하지만 막상 밤이 되자 진우는 또다시 갈등을 겪게 되었다.

지금 자신의 품안에 안겨있는 지현이의 작고 따듯한 몸.

어제까지만 해도 아내라 하여도 그저 어린아이의 몸이라 생각해 참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이 

작은 몸이 여자로서의 첫 시작을 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남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으 흠..."

자신의 이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현이가 잠꼬대를 칭얼거리며 그의 품안으로 파고 들어

왔다.

순간 달콤한 젖내가 확 풍겨왔다.

`아.. 아...'

진우는 살짝 지현이의 몸을 감싸안았다.

부드러운 잠옷 감촉 밑으로 지현이의 보들보들한 몸이 느껴졌다.

어느새 진우의 중심으로 피가 몰려와서 그의 물건이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나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지현이의 몸을 천천히 쓸어 내렸고, 그의 잠옷 아래서 일어선 자

지는 지현이의 아랫배를 찌르고 있었다.

이렇게 진우는 약간 열에 들뜬 기분으로 품안의 어린 몸을 서서히 열어가려 하였다.

그때였다.

"으음.. 아빠.."

지현이가 잠결에 뒤척이며 흘린 소리에 진우는 순간 정신이 퍼득 들었다.

그랬다.

이 몸 안에 아내의 영혼이 들어있건 말건, 이 작은 몸은 분명히 자신의 어린 딸 지현이의 육신

이었다.

아직 어딘가 영혼이 살아있을지 모르는 지현이의 육신.

그동안 그의 욕망을 억눌러왔던 이 사실이 새삼 상기가 되었다.

하다 못해 딸의 몸이 아니라 해도 이 몸은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것이다.

설령, 그 영혼의 주인이 30대 여성이라 할지라도.

`그래.. 자는데 의견도 묻지 않고 이러는 것은 비겁한 짓이야..'

진우는 그렇게 스스로 핑계를 대며 지현이의 옷 속으로 집어넣으려던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뜨거워진 몸을 식히느라 거실에 나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휴 우..."

거실에는 베란다를 통해 안으로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거 미치겠구만...'


그 이후로도 진우에게는 여러 차례 유혹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지현이가 방학을 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무더운 주말이었다.

너무 더워서 샤워를 좀 하려고 욕실에 들어서려 할 때였다.

"아.. 잠깐만 요.."

방금 밖에서 들어왔던 지현이가 욕실로 들어가려는 그를 붙잡았다.

"응? 왜 그러니.."

"나.. 방금 밖에서 들어와서 무척 덥단 말이에요.. 저부터 샤워할께요.. 예..?"

"에이.. 새치기하는 게 어디 있어.. 나도 무척 덥다구.."

"아이.. 좀 봐줘요... 흐응..."

"내참.. 흐음.. 그래 그럼 같이 하자.. 솔직히 당신하고 같이 목욕한지도 꽤 되었잖아.."

"저랑.. 같이요..?  .......  음.. 글쎄....  그래요... 공평하게... 그리고 보니 정말 오래간

만이네..."

진우는 덥다는 생각에 빨리 샤워를 하고싶어 이렇게 말했지만, 막상 지현이가 자기를 따라 욕실

로 들어오자 "아차.."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겨우 참고 있는데.. 이거 괜찮으려나..?"

기대반 우려반으로 두근거리며 지현이가 옷을 벗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 꺼풀 한 꺼풀 작은 몸에서 벗겨져 나가는 옷가지들 사이로 드러나는 새하얀 알몸.

그것은 그의 기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진우는 솔직히 놀라고 있었다.

6학년이라 하더라도 아직 초등학생의 몸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아이들의 발육이 좋다는 말이 실

감이 나듯이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이제 막 피어오르려는 한 송이 꽃봉오리였다.

아직 야트막한 부풀어오름이었지만, 그녀의 새하얀 나신에는 부드러운 여성의 곡선이 흐르기 시

작하고 있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진우가 딸아이의 알몸을 본지는 1년이 다 되었다.

아이가 5학년 들어 아빠와는 목욕도 같이 안 하려 들었기 때문에, 작년 여름에 바다에 갔을 때 

보았던 수영복에 덮인 몸매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1년 사이의 변화는 그동안 조금씩 옷 사이로 엿보게되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지만, 정말로 

큰 것이었다.

진우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딸아이의 몸을 보며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어.. 같이 목욕 안 하실 거예요?"

그가 상념에 잠겨서 우두커니 서있자 지현이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으 으응.. 그래 목욕을 해야지.. 아.. 덥다.."

진우는 옷을 벗으면서 왠지 모르게 자신의 물건을 타올로 가리고 행동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아내의 영혼이 든 지현이가 아니라,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드는 감수성 

예민한 딸아이처럼 자꾸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현이는 무엇이 즐거운 듯 욕조 안에 몸을 담고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떨어져서 어색한 기분으로 샤워를 하였다.

그런 어색함을 깨뜨린 것은 지현이였다.

"제가 등 밀어드릴게요..."

지현이가 욕조에서 나와 등을 밀어준다고 그의 몸에 달라붙었다.

"아..아냐.. 간단히 샤워만 하러 들어온 건데.. 뭐..."

"아이 참.. 그래도 오랜만에 같이 하는 목욕인데요..."

지현이는 당황하며 거부하는 진우의 팔을 끌어당기며 욕실 바닥에 앉혔다.

진우는 어쩔 수 없이 지현이에게 끌려 바닥에 앉으면서 바로 코앞에서 지현이의 알몸을 볼 수 

있었다.

지현이의 새하얀 알몸은 물기에 촉촉이 젖어 탐스럽게 빛을 내고 있었다.

조금씩 도톰하게 부풀어오르는 젖가슴 위에는 앙징맞은 작은 젖꼭지가 수줍게 돋아 있었고, 가

냘픈 허리 아래에 싱그러운 두 허벅지 사이에는 아직 어린 소녀의 계곡이 굳게 닫힌 채 자리하

고 있는 것이었다.

그 어린 계곡은 아직 잔털도 나지 않은 순수한 모습 그 자체였지만, 그곳도 물기로 촉촉하게 젖

어있었다.

진우는 잠시 아내의 어린 몸, 아니 딸아이의 어린 몸이 자못 황홀한 듯 멍하니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을 느꼈는지 지현이가 좀 당황한 듯 몸을 웅크리며 가리다가 더듬거리며 말을 했

다.

"왜..왜 그러세요.. 이상하게.. .... 저.. 어서 돌아앉으세요.  드 등 밀어드린다고 했잖아

요.."

"으응.. 그 그래... "

진우도 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앉았다.

그의 행동에 약간 동요를 받은 듯 지현이가 내쉬는 작은 숨결이 그녀의 풋풋한 내음과 함께 등

뒤로부터 느껴졌다.

그러자 진우의 물건이 서서히 발기를 하고 있었다.

더욱 어려지고 싱그러워진 아내의 몸, 다시 어린 처녀가 된 아내의 몸, 아니 그것은 이제 막 피

어오르는 딸아이의 몸.

진우의 마음은 점점 몸 속 저 아래에서 치미는 욕정으로 혼란스러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저 아내의 어린 몸을 덮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먼저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의 경우에 생길 피해는 결국 딸의 몸을 가진 아내가 보게 될 것이기에.

"저... 다 했어요.."

지현이가 아직 상기된 표정으로 작게 이야기를 했다.

"응?  아..!  그 그래.. 참.. 나도 밀어 줄게.."

"아... 예..  그 그러세요.."

그렇게 진우가 지현이의 등을 밀어주기 위해 돌아앉을 때였다.

"헉..."

순간 지현이의 입에서 작은 놀라움의 소리가 새어나왔다.

진우도 놀라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잔뜩 피가 몰려 단단하게 발기해있는 자신의 자지가 

어느새 벌려진 타올 사이로 빳빳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오히려 잘 되었구나 하고도 생각했다.

구태여 말로 안 해도 아내가 지금 자신의 의사를 알았을 테니 무언가 반응이 있겠지 하고 생각

했다.

그러나 아내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지현이는 놀란 표정으로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로 없었다.

그녀의 가냘픈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매우 심하게 충격을 받은 듯 동요하고 있었다.

"저기.. 여보..."

진우가 안 되겠다 싶어 무언가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저 저.. 먼저 나가 볼게요..."

지현이가 황급히 일어나 욕실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어.. 지현아.. 아니.. 여 여보.."

진우는 아내의 반응이 정말 뜻밖이었다.

본인의 의견도 묻지 않고 그가 밀어붙이려 한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것일까?

그는 좀 착잡한 심정으로 한동안 거실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 후에도 저녁 내내 지현이는 방에 들어가 진우와 시선이 마주치는 걸 피하려 했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상념에 젖어있던 진우는 지금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해결을 보아야 할 문제였다.

그래서 일단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을 먹고 지현이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지현이는 침대에 누워 자고있는 것 같았다.

진우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현이의 작은 몸을 등뒤에서 두 팔로 감싸안았다.

움찔.. 

지현이가 아직 잠이 들지 않은 듯 반응을 했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

"....... 예.."

"아까는 미안했어.. 내가 너무..."

"아 아니에요.."

지현이가 부끄러운 듯 말꼬리를 작게 흘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이었잖아..."

"......?"

"언제까지 이 문제를 뒤로 미루어 둘 수는 없는 거야..  무 물론, 지현이의 영혼이 정말 죽었다

는.. 확신이 설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 줄 수는 있겠지만..."

"무 무슨 말씀이세요?"

"응? 무슨 말이냐고..?  지금 우리 부부 섹스 이야기하는 거잖아.. 부부인데 언제까지 성생활을 

안 할 수는 없잖아..."

"........ 아...!"

"왜 그래..?"

"아 아니에요.."

지현이가 왠지 당황한 듯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물론.. 지현이의 영혼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해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몸은 아직 어

려..  그리고 계속 남들에게는 내 아내가 아닌 딸로 보여져야 하고.. 평생을 지현이의 몸으로 

살아가야 해..  그러니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정말 큰 일이겠지..  당신이 자꾸만 피하려는 이

유는 알아..."

"............."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부인데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거잖아.. 하다 못해 직접 삽입을 

안 하더라도.. "

그러면서 지현이의 몸을 감싸고 있던 진우의 손이 살며시 지현이의 잠옷 앞섬을 열며 어린 젖가

슴으로 파고들었다.

옷 속에서는 지현이의 따뜻한 체온과 함께 미세한 몸의 떨림이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그리고 손끝에 여아용 브래지어의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순간 지현이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두려운 듯 앞섬을 여미고 있었다.

"아... 아..."

"아니.. 여보.. 왜 그래..?"

진우도 지현이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일어나 마주 앉았다.

그는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저... 시 싫어요..."

지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작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를 진우는 아무 말도 없이 한참 동안을 바라만 보았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서 흐른 뒤 마침내 진우가 입을 열었다.

"그 그래.. 그만 두자.."

진우는 아내가 너무 질겁을 하며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자 그만 두기로 했다.

그동안 겉으로 보인 것과는 달리 아내는 아직 심리적 육체적으로 지현이의 몸에 적응하지 못했

었나보다.

그래 그렇겠지, 어느 누가 이런 상황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그녀에게 성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처사일지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진우는 지현이에게 말을 계속했다.

"그래.. 아직은 너무 성급했나 봐.. 미안해.. 어쩌면 지현이의 영혼이 살아있을지 모르는데.. 

언제 아이가 돌아올지 모르는데..  그래.. 그래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앞으로도 나 어쩌면 

참지 못할지도 몰라..  그러니 이제부터 각방을 쓰자.. 당신은 지현이 방을 써.. 어차피 내년이

면 중학교에 올라갈 텐데 부녀가 같은 방을 쓴다면 주변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그리고는 조용히 안방을 나가 베란다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젠장.."

진우는 낮게 내뱉었다.



5장. 또 다른 비밀.



예전에 쓰던 방으로 옮긴 지현이는 아직도 떨려오는 가슴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녀의 작은 몸을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  아빠...'

사실 그 동안의 지현이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딸인 지현이의 영혼이 사라지고 대신 엄마의 영혼이 딸의 몸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모두 이

야기를 만드는 재능을 가진 한 어린 문학소녀의 상상력이었을 뿐이었다.


지현이가 사고로 깨어났을 때 눈앞에 처음 보인 것은 낮설은 하얀 천장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된 것인지 영문을 몰라 움직이려던 지현이는 곧 자신이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산소호흡기가 덮여있는 작은 입에서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

았다.

그리고 눈앞에 간호사의 얼굴이 보이고는 금새 사라졌다.

그때서야 비로소 지현이는 자신이 병원에 있는 것을 알았다.

`내 내가 왜..? 병원에 있지.. 응?  어 엄마는.. 엄마 어디 있어..?'

지현이가 애타게 엄마를 찾으며 속으로 울부짖고 있을 때 의사들이 들어와 그녀를 살펴보았고, 

곧이어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어..! 아 아빠...'

그러나 역시 아무 소리도 말할 수 없었고, 자신을 바라보며 울고있는 아빠를 보며 지현이도 그

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자신이 엄마와 타고 가던 버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그럼.. 엄마는.. 엄마 어떻게 되었어요?  아빠.. 아빠..'

그러나 이런 지현이의 외침을 들을 수 없는 아빠는 의사를 따라 병실 밖으로 나갔고, 지현이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지현이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뒤에도 사고의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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