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삼촌에 이어 외삼촌까지 -- 단편

2022.03.02 12:18 16,1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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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에 이어 외삼촌까지 

전 지금 대학 이학년에 재학 중이 대학생입니다. 그런데 저는 삼촌에게 처녀를 따먹히고 그도 부족하여 지금은 외삼촌의 물받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금 밤이면 밤마다 저와 함께 알몸으로 지내고 있는 외삼촌으로부터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학 학자금을 대어준 보답을 하는 의미로 자기의 아이를 낳아 달라는 협박 아닌 강요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불쌍한 여대생의 고백을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의 불행의 씨앗은 아빠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총각 시절부터 장사를 하였답니다. 장사에 손이 익다 보니 장사의 크기가 점점 커졌고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더 커지기 시작하더니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야반도주를 하여버렸고 길거리로 몰린 엄마와 저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신 분이 계셨으니 그분을 우리 아빠의 엄마이자 저의 할머니였습니다. 당시에 할머니는 시골에서 삼촌과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짓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아빠에게 힘을 쓰다 보니 삼촌은 고등학교만 나오고 시골에 묻혀서 장가도 가지 못 하는 노총각으로서 생활하며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것입니다. “어~수진아 너 벌써 자위하니?”할머니 집에서 생활을 시작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몇 칠이 지나지 않은 날 공부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제 손을 치마 속으로 들어갔고 중학교에 오르고 나서 친구들에게 배운 대로 손바닥으로 보지둔덕을 문지르는 자위를 하였는데 그만 들 일을 하고 돌아오던 삼촌이 창문 너머로 제 방을 들여다봤고 제 행동을 보아 버린 것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하자 “하긴 나는 너보다 더 어려서부터 딸딸이를 쳤지, 기다려”삼촌이 사라졌고 “수진아 너나 나나 혼자서 자위를 하기 보다는 우리 서로 도와가며 하면 어떻겠니?”마루를 통하여 제 방으로 들어오더니 말하였습니다. “...............” “할머니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지금은 아니고 생각 있으면 밤에 문을 걸지 말고 하기 싫으면 문을 걸어 잠가.”하고는 제 젖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고 나가버렸습니다. “드르륵 쉿!”호기심이 강하였던 저는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고 삼촌이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 하자 “할머니 잠이 들었지만 그래도 조용히 하자 알았지?” “응 삼촌” “아직 빠구리 경험은 없지?” “그걸 말이라고 물어?”눈을 흘기며 대답하자 “시골에 네 또래 애들 중에 이미 때인 애들 많아” “그건 나도 알아”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도시보다도 시골에서는 풍기가 아주 문란하였습니다. 남녀공학인 시골의 농고에서는 선생님들이나 급우들 눈을 피하여 포옹 내지는 키스에 젖가슴을 주무르는 등 대담하게 하는 행동들이 저 눈에도 수차례 목격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학년의 한 언니는 유부남인 선생님과 붙어먹었다는 소문이 들렸을 정도였습니다. 또 남학생들은 대부분 콘돔을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였고 선생님들도 담배를 가지고 다닐 경우 체벌을 하였지만 콘돔은 묵인을 할 정도였습니다. “자위는 자주 하니?” “가끔 삼촌은?” “나도 가끔” “남자는 어떻게 해?” “좆을 이렇게 잡고 이렇게 하는 거야”삼촌이 대담하게 자신의 좆을 파자마 안에서 끄집어내더니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잡고는 용두질을 쳐 보이더니 “너는 어떻게 하니?” “손바닥을 거기에 대고 문질러” “해 봐라” “부끄러워” “부끄럽기는 이제 서로 도우며 할 사이인데” “그래도” “삼촌하고 서로 돕는 게 싫니?” “싫은 건 아니지만” “그럼 보여 줘” “히히히 그럼”걸상에서 일어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팬티를 밑으로 내리는데 “뭘 그리 숨기니. 와~! 예쁜데” “히히히 부끄럽다니까” “이제 덜 부끄럽지?” “조금은?” “수진아 너 남자 좆 빨아 봤니?”삼촌이 슬며시 제 손을 잡아당기더니 자신의 좆을 쥐어주며 물었습니다. “아니 아직.......” “생각은 있고?” “모......몰라” “삼촌은 네 여기 빨아보고 싶은데”제 보지둔덕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하더니 “여기 누워봐” “싫은데......”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치 못 이기는 척 삼촌 손에 끌려서 눕혀졌고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다” “응 알아”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삼촌은 머리를 제 가랑이 사이에 박고는 보지를 빨기 시작하였고 저는 한참은 발기가 된 삼촌 좆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주물럭거리다가 용기를 내어서 혀끝을 삼촌 좆에 닿게 하고 좆의 갈라진 부분에서 이슬처럼 맺힌 물방을 같은 것을 날름대어 묻히고도 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자 삼촌의 좆을 입안으로 넣고 핥고 빨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삼촌의 혀가 보지를 빨자 간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할머니가 깨면 사단이 날 것이기에 억지로 참았고 조근 있자 저 혼자 몰래 숨어서 자위 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흥분이 되기 시작하면서 보지 안에서는 제 스스로가 느껴질 정도로 많은 물이 흐르는 것을 알았으나 삼촌은 한 방울도 이불 위에 흘리거나 남기지 않게 깔끔하게 삼켜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삼촌은 자신의 분신을 입안에 뿌렸고 처음에는 쓰고 비릿하여 역겨운 느낌이 들었지만 계속 하다 보니 거부감을 사라졌고 삼촌의 좆 물을 삼촌처럼 한 방으로 이불 위에 흘리지 않고 삼키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저와 삼촌 사이에는 비밀이 생겼고 저녁에 밥을 먹거나 TV를 보면서 삼촌이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할머니 몰래 들어 보이면 밤에 제 방으로 오겠다는 뜻이고 반대로 왼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면 저더러 삼촌 방으로 오라는 사인이었고 그런 삼촌의 사인을 보고 제가 두 손의 검지로 X자 표시를 하여 보이면 생리라든지 아니면 가타 사정으로 불가하다는 표시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수진아 매일 같은 것만 반복하니 재미가 좀 그렇지?” “.............”전 삼촌이 빠구리를 하자고 하는 것으로 알고 말을 하지 못 하자 “박지는 말고 삼촌 좆을 수진이 보지에 대고 비비면 어떨까?” “히히히 몰라”생각지도 않은 제안에 두려움이 사라지자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위험하지 않은 날을 알지?” “임신?” “응” “자세히는 몰라도 조금은 알아, 생리 일주일 전후는 안심을 해도 된댔어.”이미 빠구리를 하고 다니는 친구들에게서 들었던 말을 하자 “그래 그런 날은 내 좆 물을 수진이 보지 안에 조금 흘러 들어가게 하고 말이야” “히히히 그래 그러면 되겠어.” “그럼 누워” “응”하고 눕자 삼촌은 몸을 제 몸 위에 포개고는 자신 좆을 손으로 잡고 제 보지의 금에 대고 상하로 문질러가면서 천천히 딸딸이를 쳤고 그러자 빨아 줄때에 비하여 또 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으~~~~”삼촌에 자신의 좆을 제 보지에 대고 마찰을 시키더니 빨아 줄 때의 마지막처럼 신음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삼촌 그렇게 힘주면 박혀”삼촌이 제 보지구멍 입구에 좆을 대고 누르자 가슴을 밀치며 말하자 “그래 안 들어가게 할 거야. 으~~~들어오니?” “응 뜨거운 게 들어와 히히히” “입에 싸는 것하고 느낌이 다르지?” “응 더 이상 해” “매일 이렇게 할까?” “아니 하루 걸러서 이렇게 해” “하루는 빨고 하루는 이렇게?” “응” “좋아 그러자” “응 대신 박으면 안 돼 알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아~계속 들어와” “아직도 뜨겁니?” “응 여전 해” 그날부터는 하루 걸러서 삼촌을 좆으로 제 보지 금에 대고 상하로 이동일 시켜가며 딸딸이를 쳐서 좆 물을 제 보지구멍 안으로 흘려보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할머니에게 먹구름이 드리워졌습니다. 이웃에 사는 분의 경운기를 타고서 장에 가시는 도중에 경운기가 언덕에서 굴러 떨어진 것입니다. 삼 일간 혼수상태로 계시다가 나흘째 되는 날 숨을 거두시고 만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운데 삼촌이 상주가 되었고 엄마도 내려오셔서 함께 장례를 치렀습니다. 삼우제를 지내고 엄마가 삼촌에게 사정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혼자 벌어서 저를 고등학교에 계속 다니게 할 수가 없다면서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 까지 만이라도 데리고 있어 달라고 말입니다. 몇 마지기 안 되는 논밭을 가진 삼촌은 힘들겠지만 데리고 있는 동안은 데리고 있겠다고 하였고 이튿날 엄마는 돌아갔습니다. 시골집에 남은 것은 삼촌과 저뿐이었습니다. 삼촌과 저뿐이라는 뜻은 언제든지 삼촌과 제가 어울려서 하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수진이 우리 거의 열흘 이상을 못 했지?” “응” “모처럼 할까?” “히히히 이제 할머니가 없어서 소리 조금 내어도 되겠다. 그치?” “그래 담장 밖으로만 안 나갈 정도면 신음 많이 참았었구나.” “응 많이 참았어.” “그럼 오늘은 뭐로 할까?” “삼촌 하고 싶은 걸로 해”옷을 벗고 예전처럼 들어 누우며 말하자 “좋아”하고 말하더니 삼촌에 제 몸 위로 포개기에 저는 삼촌이 좆을 제 보지 금 사이에 대고 상하로 이동을 시켜가며 용두질을 칠 것임을 단박에 알 수가 있었습니다. “좋니?” “응, 미치게 좋아. 삼촌은?” “나도 좋지 타타타타” “으~~~~~~”얼마나 문지르며 흔들었을가 삼촌이 신음을 하더니 제 보지구멍 입구를 막고 좆 끝을 대는가 싶었는데 “악! 아파 빼”갑자기 가랑이로부터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생기면서 한 편으로는 아랫배가 더부룩한 느낌까지 들었고 놀라 토끼눈을 하고 거개를 들고 밑을 보니 이미 삼촌의 좆을 제 보지구멍 안으로 자취를 감춘 후였습니다. “몇 칠만 참아 이제 너도 진짜 좆 맛을 알아야 할 나이거든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삼촌은 삼촌이잖아 근친상간은 안 좋다던데” “물론 좋지는 않겠지 하지만 너와 나 둘이 입을 열지 않으면 밖으로 수문이 날 이유가 없겠지?”삼촌이 엉덩이를 흔들며 말하였습니다. “그럼 내가 밤에는 삼촌 색시가 되는 거야?” “그렇지 우리 색시 예쁘다”하고는 처음을 깊은 키스를 하면서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매일같이 밤만 되면 저는 삼촌의 색시가 되어서 색시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하였습니다. 물론 삼촌은 저에게 피임약을 사서 먹게 하면서 말입니다. 고등학교 일학년 초여름부터 이학년 겨울방학이 시작이 된 직후까지 저는 제 본분을 다하였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이 되고 몇 칠이 지나지 않아 엄마로부터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고 올라갔습니다. 엄마가 저를 데리고 간 곳은 외삼촌댁이었습니다. 엄마하고 외삼촌은 배다른 이복 남매입니다. 엄마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기 직전 엄마를 낳아주신 외할머니가 몹쓸 병에 걸려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외할아버지는 새 장가를 들었고 그렇게 맞이하였던 작은 외할머니의 몸에서 태어 난 것이 외삼촌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재산은 엄마 65% 외삼촌 35%로 수준을 나누었으며 외할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은 재산을 우리 아버지는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야반도주를 하였고 엄마는 남의 식당을 전전하여 겨우 밥 끼니나 먹으며 사는 반면 35% 밖에 유산을 상속 받지 못 한 외삼촌은 그 유산을 열심히 일구어 과수원도 장만하였고 논밭도 엄청 많이 구입을 하여 인근에서는 부자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 외삼촌이 저를 부른 이유는 간단하였습니다. 조석을 챙겨주고 과수원 수확 철에 약간의 일손만 거들어 준다며 외삼촌댁에서 버스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대학에 보내 주겠다는 아주 달콤한 제안을 엄마에게 하였고 초등학교 때부터 줄 곳 상위권에서 벗어 난 적이 없는 대단한 학구열을 가진 저에게 대학을 다니게 할 방법이라고는 오로지 배 다른 남동생에게 저를 맡기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외삼촌과 연락을 두절하고 산 이년 동안 외삼촌에게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음은 외삼촌 집에 가서 외삼촌의 푸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외삼촌은 아빠가 야반도주를 하고 엄마하고 제가 뿔뿔이 흩어져 살기 시작한 그 해에 동남아에서 여자를 데리고 와 결혼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일 년이 조금 지난 엄마하고 외삼촌 집에 갔던 그해 가을에 외삼촌 집 근처의 한 농장에 농촌 실습을 온 같은 나라의 남자하고 눈이 맞아버려 야반도주를 하는 바람에 결혼 일 년 만에 홀아비 신새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 손이 필요하였고 여자를 구하려고 보니 마땅한 여자가 없던 참에 인근에 살았던 엄마의 친구로부터 엄마에 대한 이야기와 제 이야기를 듣고서 엄마와 저에게 의견을 물어 보기 위하여 엄마와 저를 오라고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촌과의 근친상간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고 또 불타는 학구열을 잠재울 방법이 없어 고민을 하던 저의 입장으로서는 쌍수를 들어서라도 환영을 할 일이었습니다. 엄마가 식당에서 몇 칠 휴가를 받고 왔기에 제가 삼촌과 살던 곳으로 가서 전학수속을 받아 올 동안 엄마더러 외삼촌을 도우라고 하고는 삼촌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삼촌에게는 비밀로 하고 전학 수속을 밟기 시작하였고 전학수속을 받는 동안은 아주 태연하게 평소처럼 삼촌의 색시 노릇을 하였습니다. 전학 수속을 다 받은 날 밤에 전 마지막으로 삼촌에게 외삼촌댁으로 가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가기로 하였다고 하고서는 마지막으로 삼촌을 받아들였습니다. 말 그대로 저의 입장에서는 눈물의 빠구리였습니다. 삼촌에게서 배우기 시작하였고 삼촌의 좆 맛에 익숙하였기에 삼촌의 좆과 이별 자체가 슬펐고 그래서 더 불타는 밥을 보냈습니다. 밤새도록 눈 한 번 안 붙이고 말입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저는 삼촌댁에서 나와 외삼촌댁으로 갔습니다. 분명히 외삼촌이 자기 동네는 도둑이 없는 동네라 문을 잠그고 사는 집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외삼촌댁에 도착을 하니 문은 잠겨있었고 차임벨을 한참을 누르자 외삼촌이 상기된 얼굴로 나오더니 저를 보고 화들짝 놀랐고 집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보이지 않고 욕실에서 물소리만 나서 엄마가 샤워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팬티차림으로 나온 엄마도 저를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난 엄마하고 외삼촌이 붙어먹었다는 것을 직감하였고 그건 바로 사실로 들어났습니다. 엄마가 외삼촌 방으로 후닥닥 들어가더니 옷을 입고 나왔고 제가 전학 서류를 보여주자 엄마는 가봐야 한다면서 외삼촌에게 저를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가벼렸습니다. 저보다 한 항렬이 높은 산촌하고 붙어먹은 주제에 남매 그도 이복남매와 붙어먹을 것을 모른 척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외삼촌의 밥이며 빨래와 청소를 하며 지냈습니다. 외삼촌은 아주 추운 날이 아니면 과수원에 나가서 가지치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추운 날이면 면 소재지로 출타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혼자서 집을 지키는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사람에게 할 일이 없으면 잡생각이 많아지잖아요? 제가 그랬습니다. 예전처럼 보지둔덕을 손바닥으로 비비고 문질러 봐야 삼촌의 좆을 받아들일 때의 그런 기분이 10%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인터넷으로 성인용품을 파는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각종 딜도를 보다가 수동 딜도를 보게 되었으며 그와 같은 재질의 소재를 구하기는 어렵겠지만 연한 재료를 가지고 같은 모양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여러 가지 재료들을 생각을 한 끝에 저는 양초를 녹여서 굵게 만든 다음 다듬으면 비슷한 것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겨울방학이 끝나면 새로 전학을 할 학교에 가서 수속을 밟고 돌아오는 길에 양초를 한 통과 조각칼을 샀습니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니 외삼촌은 출타 중이었습니다. 알루미늄 호일로 둥글고 길게 만들어 안에 공간을 확보한 후에 양초들을 모조리 녹였고 심지를 빼 후에 준비 된 호일에 천천히 부었습니다. 양초가 응고가 되었다 싶어서 호일을 풀어서 때어내자 제 엄지와 중지로 잡히지 않을 정도의 굵기에 길이도 삼촌 좆의 두 배가 조금 넘는 길이였습니다. 찬물에 넣어 완전하게 응고를 시킨 후부터 조각칼로 다듬기 시작하였습니다. 딱딱하지만 점점 모양은 인터넷 성인용품점에서 팔고 있는 수동 딜도의 모습을 찾아갔습니다. 손잡이 부분을 그대로 다듬고 쥐어보았더니 체열에 의하여 손이 양초가 묻는 느낌이라 비닐 호일로 칭칭 감았습니다. 만들기 시작하고 나흘 만에 완전하게 만드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고서는 그것을 제 보지 안에 천천히 넣었습니다. 뜨거운 느낌이 없어서 그렇지 그런대로 삼촌 좆같은 느낌은 들었습니다. 물도 흘렀습니다. 또 길게 하고는 오르가즘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느낌이 없어서 그렇지 저처럼 성인용품점에 출입이 불가능한 입장에서는 그런대로 쓸 만 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날부터 그것은 삼촌 대신에 제 보지를 즐겁게 해 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년아 이게 네 서방이냐?”겨울방학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 필요한 것이 있어서 시내에 다녀와서 집으로 들어가 거실로 올라서는데 외삼촌이 제가 만들어 사용을 하고는 깊숙이 숨겨두었던 양초 딜도를 어떻게도 용하게 찾아내었는지 들어 보이며 물었습니다. “..............” “따라 들어와”하고 안방으로 갔습니다. “이게 네 어미 보지 사진이다 네 보지는 어떻게 생겼기에 이걸로 쑤시냐? 좌~악!”외삼촌이 휴대폰을 열고는 사진을 하나 보이는가 싶더니 제 치마를 잡아당겨 찢어버렸습니다. “.............”고개를 숙이고도 곁눈질로 외삼촌의 휴대폰 사진을 봤습니다. 휴대폰 사진에 있는 사진은 좆 물이 흐르고 있는 장면이었고 외삼촌이 손가락으로 화면에 대고 당기자 엄마의 나신이 그대로 있었고 다시 당기자 엄마의 보지구멍에 남자의 좆이 박힌 사진이 나왔고 다시 당기자 흡족해 하는 외삼촌의 알몸이 나왔습니다. “너도 앞으로 이런 것으로 말고 내 좆으로 박아 주마 찌~익!”하고는 팬티를 당겨 찢어버렸습니다.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보지를 가리자 “이게 들어간다면 이미 다른 놈이 먼저 먹었다는 말인데 사실이지?” “예” “그 새끼가 누구니? 찌~익!”티 목덜미를 잡더니 당겨 찢으며 물었습니다. “나....남자 친구요”차마 친 삼촌이란 말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로 올라오는 바람에 헤어졌니?” “예” “좋아 그런 오늘부터 외삼촌이 그 새끼 대신 여기에 쑤셔주지 어때 싫니?”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자 “누워 얼마나 쑤셔대었는지 먼저 맛을 보자”침대로 밀어트리며 말하고는 옷을 벗었습니다. “어디 보자! 어 이년 제 어미 보지구멍 크기나 거기서 거긴데?”엄마하고 관계를 알고서도 이미 삼촌에게 처녀를 주었고 빠구리의 맛을 알게 해 중 삼촌과는 한 항렬이 높은 사이이기에 비록 이복 남매지간이지만 같은 항렬이기에 나보다는 덜 하다는 생각에서 묵인을 하였는데 외삼촌 스스로가 엄마하고도 빠구리를 하였음을 직접적으로 시인을 한 것입이다. “..............” “네 남자 친구라든 놈 네 또래가 아니지?” “예”외삼촌의 말에 거짓말을 하였다가는 무슨 봉변을 달 할 줄 모르겠기에 바른대로 대답하자 “몇 살이나 처먹은 놈이었니?”펌프질을 하며 묻기에 “서른여섯”삼촌의 나이에서 열 살을 빼고 말하자 “좋아 이제부터 넌 내 전속 물받이가 되는데 나 이외의 남자에게 가랑이를 절렸다가는 가랑이를 찢어 죽여 알겠니?” “예 외삼촌”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날부터 대학 이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저는 외삼촌이 벗으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밤 9시 뉴스가 끝나기 무섭게 알몸이 되어서 이튿날 동이 틀 때까지 알몸으로 내지면서 외삼촌의 성욕을 풀어 주어야 하는 신세로 살고 있습니다. 그걸로 끝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서 처음으로 고백을 하는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초겨울과 초여름에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서 일주일간의 휴가를 주는데 휴가를 받은 즉시 외삼촌댁으로 올라와야 하고 올라오기만 하면 부끄럽게도 우리 모녀는 엄마 입장으로는 이복동생 앞이고 제 입장에서는 외삼촌인데 그런 외삼촌 앞에 나란히 알몸이 되어 누워 있으면 외삼촌이 돌아가며 우리 모녀의 보지구멍에 좆 물을 싸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제가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외삼촌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게 법적으로 허용을 하는지 모르지만 저는 지가 마누라로 입적을 하겠다고 엄마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였고 엄마도 처음에는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하였다가는 최근에 들어서는 마음대로 하라고 아예 포기를 한 상태입니다. 이런 외삼촌의 부당한 대우에 우리 모녀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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