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엄마의 연인 - 5

2024.09.22 10:48 5,732 5

본문

이사를 하다보면 이삿짐들이 생긴다.


그리고 모든 이삿짐들이.. 새 집으로 온 이후에 바로 풀어지지는 않는다.


일부 필요한건 꺼내쓰고, 불필요하거나 중요도가 낮은건.. 몇년이 흘러도 그냥 잡동사니로 방치되곤 하는 것이다.


엄마 부재중에 집을 정리하다가, 그런 종류의 낡은 짐을 발견했다.


헌옷가지 몇벌과 립밤, 잡다한 화장품 - 전부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다. 그냥 새로 사고 말지~ 하는 생각이었을거다.


비닐 봉투에 그런것들을 착착 분류하여 담던 중, 바닥에 종이 다발이 보였다. 이면지, 우편봉투, 빈 편지봉투... 그리고 비어있지않은 편지봉투.


두툼한 편지가 나왔다. 앞에 쓰여있던 멋들어진 영어 이름으로 봐서 외국인이 보낸 편지인가 했는데, 외국에서 온건 아니었다.


멋들어진 글씨체로 엄마에게 편지를 써준것같은데... 한글임에도 처음에는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가로획 세로획등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발견하자, 그런대로 읽을 수는 있게 되었다. 


이번 이야기는 내가 직접 엄마와 섹스를 하거나 남이 엄마와 하는걸 본게 아니므로.. 상당부분 그때읽은 편지의 내용에 의존해야함을 미리 밝혀둔다.



'어두컴컴한 길에서 발견한 단 하나의 등불같은...' 이런 미사여구로 시작해서, 비유적.현학적인 표현이 난무해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상아탑을 떠나 이제 칠순이 된 촌로.. 어쩌구 하는 구절을 보니, 퇴임한 노교수인듯했다. 그 교양있는 구절들을 잔가지들만 쳐내서 일부 밝혀둔다.



-함께하는 동안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지금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려고 앞에 앉으니 복잡한 심경입니다...


-방황하는 배우자때문에 심란한 시기에, 아드님마저 군 복무 중이니 그때는 정말 힘드셨겠지요.


-그때 저는 그런 사정을 잘 몰랐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당신의 구슬픈 울음소리로 곧 알게되었습니다. 


시골로 내려가서 한적하게 밭이나 일구려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외면할수가 없었습니다. 


일평생 많은 사람들을 가르쳐왔지만 진짜로 내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하기도합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만은 세상 그 누구보다 진실하고자, 도움이 되고자했습니다.


일전에 제가 박복하여, 여지껏 독신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탄했을때 따스하게 손을 내밀어 준 당신


제가 자제력을 잃고 무례를 범했을적에 자비롭게 저를 품어주던, 그때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에 응석을 부려 이 세상에 내가 살다간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망령된 생각을 품었을때


그 망상을 망상으로 끝나지 않게 해준 당신은 저의 빛이자 구원자였습니다. 


이러한데 당신의 이름마저도 함부로 부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권유에도 말을 놓지않은 까닭은 그러한 이유였습니다.


과분한 복을 받은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을 떠나있었을 때, 그 몇달간은.. 신을 믿지 않던 저마저도 신에게 경외를 표했습니다.


무거운 몸으로 낯선 시골까지 내려와서 고생하는 당신을 보면 마음이 아팠지만.. 그마저도 몹시 어여쁘게보였습니다.


날개옷을 가지고 돌아가는 천상의 선녀는 아기도 같이 데려갔지만, 당신은 자유로이 몸만 홀로 날아갔네요.


한 남자밖에 모르던 순수한 당신을 제가 지상으로 끌어내렸는데, 염치없이 더 바랄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은혜와 영광을 빌어 은영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걸 당신에게 넘겨주었지만,


은혜와 영광이 제 품에서 잠들어 있으니 저는 하나도 아깝지않습니다. 


한 생명에 비하면 숫자가 적힌 종이다발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구좌와 관련된것도 뜻대로 처리해주십시오.


당신의 가정이 바로서는데에 힘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 대략 이런내용이었다. 


뻔한 살림살이에, 아빠가 제대로 된 일을 한적이없었는데, 누구한테서 빌렸다기에 그때는 믿었었다.


가게를 차리고 등록금을 내고 그 ㅈ같은 아빠의 도박빚까지.. 그 모든걸 혼자 다 해내셨던거다.


스폰을 받는걸로도 모자라 씨받이 역할까지.. 40중반의 몸으로 마지막불꽃을 태운 그 대가는 온 가족을 구할 정도로 달콤했지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누구처럼 행패를 부리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라고 나의 역할을 다했었던가?


돈도 벌지않으면서 애들이랑 놀고 여자에게 비싼선물이나 해주려했던 그때의 내가 한심하게느껴졌다.


군대가기전이니 놀아야지.. 라고 하기에는, 그 이후 엄마의 짐이 너무나도 무거웠던것이다. 


은혜와 영광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구김살없이 빛을 내며 살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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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5

스와핑님의 댓글

안녕하세요 항시 잘 보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Qwerty9999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이원님의 댓글

이원 2024.09.22 11:39

노교수의 아이(은영)를 낳아준건가요?
님을 포함하여 주변에서 임신을 모를수가 없었을텐데
대단하다고 밖에 ㅎㅎ

Qwerty9999님의 댓글

아빠도 거의 딴집살림하고있었고.. 저도 어디 친정이나 친구집에서 쉬다오신줄알았네요. 떡을 쳐도 애까지 낳았을줄은 저도몰랐죠 ㅎㅎ

페페님의 댓글

페페 2024.09.22 23:26

예전에 어떤 여자분이 은퇴한 늙은교장 출신의 노인에게 복지사로 댜니면서 그노인에게 몇차례 성욕을 풀어주고 얼마후에 노인이 죽으면서 그여자분에게 소정의 재산을 남기었다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한걸 본적있네요.
그녀의 삶도 글쓴님과 비슷한 관게를 가지고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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